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꽤 행복한 편이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성적은 전교 1-2등을 다투는 쪽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3-4등은 항상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의 부도로 집안의 경제사정은 IMF 이전에 비해 나빠지긴 했지만 나나 동생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만하면 운이 좋은 축이었다. 학교공부는 물리와 생물 정도를 제외하면 지루했지만, 공부가 하기 싫을때는 조용한데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지하철을 타고 근처 구립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책이나 읽다가 올 수도 있었다. 짝사랑의 상대는 나를 돌아봐주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고3 때 담임선생님과의 진로상담은 딱 한번 있었고, 3분짜리 상담의 내용은 한줄로 요약하면 "선생님은 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였다. 그리고 선생님의 기대에 걸맞는 대학교에 갈 수 있었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평탄하게 끝난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가끔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악몽을 꾼다.
조각가인 동문 선배가 설계했다는 학교 건물은 나무로 된 부분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였지만, 채광과 환기가 좋지 않아서 어둡고 습했다. 나와 친구는 건물을 건축을 안하고 조각을 했으니 이따위지 하며 비웃었다. 선생들은 애들이 기침을 해서 시끄럽다며 패고 편두통이 있어 짜증난다며 패고 선생에게 인사를 안 해서 버릇이 없다며 팼다. 그분에게 다음날 등교길에 인사를 하면 코끝 하나 끄덕이지 않았다. 아, 물론 성적이 나쁠 경우 더욱 많이 팼는데 그 무렵엔 그게 아주 조금 더 정당한 체벌이라고 믿었다. 나는 구면 거울에 반사되는 평행 광선은 한 초점에 모이지 않는다는 걸 물리 선생에게 설득하려 했다가 개무시당한 이후로는 수업내용에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남자고등학생들이란 점심시간 1분전이 되면 초원을 달리는 물소떼들이 낼 법한 두두두두 하는 땅울림 소리를 내며 식당으로 달려가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제일 천천히 걸어가 제일 늦게 배식을 받은 다음 제일 늦게 식당에서 나왔다. 급식에는 미역국과 북어국과 콩나물국 등의 다양한 메뉴가 번갈아가며 나왔지만 불가사의하게도 맛은 항상 똑같았다. 식당 주인 겸 매점 주인 겸 이사장의 사촌동생은 1700원짜리 학교 지정 넥타이를 사고 2000원을 내면 가끔 500원짜리 세개를 돌려주는 정신빠진 사람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만 두번이나 자가용을 갈아치웠다.
남자애들이 제일 오랫동안 진지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주제는 내친구의형의동생의아는사람이 들은 신뢰할만한 소문에 의하면 누구누구가 누구누구랑 잤다더라 하는 얘기가 아니면 포르노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었고 나는 그런 얘기에 관심 없는 척 하기 위해, 혹은 가끔은 정말로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그 지루하고 좁고 작은, 별로 고통스럽지 않은 지옥 속에서 나는 라디오헤드와 전람회와 류이치 사카모토와 이상은과 스매싱 펌킨스와 데이빗 보위와 패닉을 들었다. 어떨 때는 혼자 있고 싶어서, 어떨 때는 이 모든 것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고 싶어서 들었지만, 대개는 그냥 좋아서 들었다.
패닉은 1집의 [달팽이]와 [왼손잡이]가 제일 많이 팔렸고, 곡 자체는 3집이 더 세련되었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 패닉의 전성기는 2집이었다.
insomnia.wma - panic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가끔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악몽을 꾼다.
조각가인 동문 선배가 설계했다는 학교 건물은 나무로 된 부분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였지만, 채광과 환기가 좋지 않아서 어둡고 습했다. 나와 친구는 건물을 건축을 안하고 조각을 했으니 이따위지 하며 비웃었다. 선생들은 애들이 기침을 해서 시끄럽다며 패고 편두통이 있어 짜증난다며 패고 선생에게 인사를 안 해서 버릇이 없다며 팼다. 그분에게 다음날 등교길에 인사를 하면 코끝 하나 끄덕이지 않았다. 아, 물론 성적이 나쁠 경우 더욱 많이 팼는데 그 무렵엔 그게 아주 조금 더 정당한 체벌이라고 믿었다. 나는 구면 거울에 반사되는 평행 광선은 한 초점에 모이지 않는다는 걸 물리 선생에게 설득하려 했다가 개무시당한 이후로는 수업내용에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남자고등학생들이란 점심시간 1분전이 되면 초원을 달리는 물소떼들이 낼 법한 두두두두 하는 땅울림 소리를 내며 식당으로 달려가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제일 천천히 걸어가 제일 늦게 배식을 받은 다음 제일 늦게 식당에서 나왔다. 급식에는 미역국과 북어국과 콩나물국 등의 다양한 메뉴가 번갈아가며 나왔지만 불가사의하게도 맛은 항상 똑같았다. 식당 주인 겸 매점 주인 겸 이사장의 사촌동생은 1700원짜리 학교 지정 넥타이를 사고 2000원을 내면 가끔 500원짜리 세개를 돌려주는 정신빠진 사람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만 두번이나 자가용을 갈아치웠다.
남자애들이 제일 오랫동안 진지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주제는 내친구의형의동생의아는사람이 들은 신뢰할만한 소문에 의하면 누구누구가 누구누구랑 잤다더라 하는 얘기가 아니면 포르노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었고 나는 그런 얘기에 관심 없는 척 하기 위해, 혹은 가끔은 정말로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그 지루하고 좁고 작은, 별로 고통스럽지 않은 지옥 속에서 나는 라디오헤드와 전람회와 류이치 사카모토와 이상은과 스매싱 펌킨스와 데이빗 보위와 패닉을 들었다. 어떨 때는 혼자 있고 싶어서, 어떨 때는 이 모든 것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고 싶어서 들었지만, 대개는 그냥 좋아서 들었다.
패닉은 1집의 [달팽이]와 [왼손잡이]가 제일 많이 팔렸고, 곡 자체는 3집이 더 세련되었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 패닉의 전성기는 2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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