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원리에 의해 학질(말라리아)을 퍼뜨리는 모기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 논하는 글이더군요.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아이디어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학질은 모기가 퍼뜨리는 전염성 열병이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만 1년에 100만~300만명의 환자들이 이 병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학질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흔한 병이었고, 백신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무서운 병입니다. 백신 대신 예방약이 있기는 하지만, 백신과는 달리 예방약은 계속 먹지 않으면 예방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 약을 지속적으로 구입할 돈이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모기장과 모기약 외에는 학질에 걸리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학질은 사람들 사이에서 직접 퍼지지 않습니다. 학질 환자의 피를 빤 모기의 몸에 기생하고 있다가, 이 모기가 다른 사람의 피를 빨 때 그 피 속으로 퍼져들어가 전염됩니다. 다행히도, 유전공학자들은 몇년 전부터 학질에 면역이 된 모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기가 학질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이 유전자를 M 유전자라고 합시다.
세상의 모든 모기가 M 유전자를 가져서 학질에 면역이 된다면 모기가 더 이상 학질을 사람들에게 퍼뜨리지 못할 것이고, (M 유전자를 가진 모기에게도 전염되는 변종 학질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퍼질 곳을 잃게 된 학질은 빠른 속도로 멸종할 겁니다. 문제는, M 유전자를 심은 모기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세상의 모든 모기에게 M 유전자를 심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실험실에서 대량생산해서 퍼뜨린다고 해도, M 유전자가 모기의 생존이나 번식에 특별히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M 유전자가 없는 모기가 여전히 세상 모기의 대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여기서 이 논문의 놀라운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M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를 제치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겁니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 두 개의 또다른 유전자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모기의 알을 배아 단계에서 죽이는 유전자인, 유전자 K 입니다. 어미 모기가 유전자 K를 갖고 있으면 그 어미의 알은 깨어나기도 전에 죽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주의할 점은 새끼가 유전자 K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는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어미의 유전자가 새끼의 사망 확률을 결정합니다.)
하나는 유전자 R입니다. 이것은 K 유전자에 배아가 저항하도록 해주는 유전자입니다. 이 경우, 새끼가 유전자 R을 갖고 있으면 어미가 유전자 K를 갖고 있어도 새끼가 살아남게 됩니다.
여기서 생물 시간에 배운 멘델의 유전법칙을 잠시 떠올려 봅시다. 양성생식하는 모든 동물들은 유전자를 2쌍 갖고 태어나지요. M, K, R 유전자를 가진 암컷과 평범한 수컷이 교미한다고 하고, 평범한 수컷은 M, K, R에 각각 대응하는 유전자인 m, k, r을 갖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M, K, R은 유전공학자들이 만든 유전자고, m, k, r은 각각에 대응하는 위치에 있는, 그냥 평범한 모기 유전자입니다.
현대의 우리는 멘델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요. 우리는 유전자들이 염색체상에서 매우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면 같이 선택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염색체 교차의 원리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미의 M, K, R 유전자를 매우 가깝게 위치시키면 새끼 모기는 MKR을 갖거나 mkr을 갖게 됩니다. Mkr이나 mkR과 같이 섞인 유전자를 갖는 새끼 모기는 거의 없습니다.
이제 실험실에서 조작된 MKR 암컷을 밖에 풀어놓고 mkr 수컷과 교미시켜봅시다.
MKR 유전자를 갖는 새끼는 아무 문제 없이 태어납니다. R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미의 K 유전자에 저항하고 정상적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mkr 유전자를 갖는 새끼는 R 유전자가 없어서 어미가 가진 K 유전자의 영향을 받고 대부분 배아 단계에서 죽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이 어미에게서 태어나는 새끼는 반 정도는 죽어 버리고, 반 정도는 MKR 유전자를 갖게 되어 학질에 면역인 모기가 됩니다. 따라서 M 유전자를 모기들 사이에 퍼뜨리고 m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멸종시키게 됩니다.
이 경우 새끼가 반 가량 죽는 것은 진화적으로 큰 문제가 못 됩니다. 모기는 하나의 웅덩이에 한번에 많은 알을 까는데 이 웅덩이에 100마리의 모기 새끼를 먹일 정도의 영양분밖에 없다면, 알을 1000개 까던 2000개 까던 태어나는 모기의 숫자는 100마리 정도가 됩니다.
논문 저자들은 비슷한 일을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초파리에게 실험을 했는데 10-12세대 안에 m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가 멸종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계산할 때, 주기적으로 MKR 유전자를 가진 모기들을 풀어놓으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학질을 퍼뜨리는 모기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는군요.
천재적인 아이디어입니다만, 이 방법은 여러가지 윤리적,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여 불특정 다수의 모기의 멸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신경쓰지 않아도 신경써줄 사람들이 있을 것 같군요.
둘째, 모기는 우리 피를 직접적으로 빠는 곤충입니다. MKR 유전자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확률은 매우 적습니다만, 그래도 만에 하나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라면,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모기에게서 인간에게 유전자가 전달될 일은 없겠지 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RNA 역전사바이러스는 한 동물의 DNA를 다른 동물의 DNA에 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존하는 바이러스 종의 10분의 1도 채 알지 못합니다.
셋째, 유전공학은 이제 실험실 안에서 개체들의 진화에 손대는 영역에서 벗어나, 전 세계의 개체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강력해졌습니다. 이것은 잘못 다룰 경우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힘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언젠가 "세상에서 꿀벌이 없어지면 4년 안에 인류는 멸종한다"고 주장했지요. 꿀벌이 없으면 식물들이 더 이상 수분을 할 수 없고, 식물들이 더 이상 수분을 할 수 없게 되면 1년생 식물들이 사라질 것이며, 1년생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소, 돼지, 양, 닭 등을 포함해서)들이 멸종하면, 결국 사람도 사라질 것이라구요.
그런데, 만약 한 유전공학 실험실에서 일어난 실수로 전세계의 벌을 멸종시킬 수 있는 유전자가 퍼져나간다면? 물론 그런 실수가 일어날 확률도 몹시 낮고 그런 유전자가 실제로 만들어질 확률도 거의 없지만 (특정한 변종을 멸종시킬 수야 있겠지만 벌 전체를 멸종시키는 유전자가 존재하기는 힘듭니다) 우리는 그게 정말로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유전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넷째, 지금까지 나열한 위험들은 위험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기술에 대한 이유없는 공포에 가깝습니다. 반면 학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10초에 한명 꼴로 죽이고 있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여러분이 이 한 문단을 읽는 동안 또 누군가가 학질에 걸려 죽어갔을 겁니다. 그 질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고서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가 아닐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인류가 새로이 손에 넣은 이 힘이 두려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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