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사진은 1800년대 중반에 처음 나왔지만, 1800년대에 제작된 컬러사진들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흑백사진과는 달리 감광한 상을 정착시킬 방법이 없어 금방 없어졌고, 게다가 빨간색을 인식할 방법이 없어 초록색과 오렌지색 두 가지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사진이었다고 해요.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진짜 컬러 사진은 autochrome이라는 방법이 개발된 이후에 찍은, 1907년 이후의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흑백사진기만 있던 1900년대 초에도, 러시아의 프로쿠딘-골스키(Prokudin-Gorskii)라는 화학자가 재미있는 방법으로 컬러 사진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 시대에도 RGB, 즉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을 합성해서 모든 색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는데, 이 원리를 이용해서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에 해당하는 흑백사진을 각각 찍고 세 사진을 합성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거지요.
프로쿠딘-골스키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특수한 필터를 고안했습니다. 빨강, 초록, 파랑의 색을 거르는 필터를 이용해 흑백사진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연속해서 찍는 것이지요. 노출시간이 긴 그 시절의 카메라를 이용해 쓸만한 이미지를 얻으려면 피사체가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정지해 있는 피사체를 상대로는 훌륭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겠지요. 그렇게 해서 찍은 것이 아래 왼쪽의 세 장의 사진들입니다. 이렇게 빨강, 초록, 파랑의 필터를 통해 찍은 세 가지 사진에 인위적으로 각각의 색을 입혀서 하나로 겹치면 맨 오른쪽과 같은 컬러 사진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프로쿠딘-골스키는 오른쪽과 같은 컬러 사진을 만들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에겐 포토샵도 없었고 -_- 그가 사진을 찍을 무렵에는 지금과 같은 색깔을 내는 감광제가 없었겠지요. 그의 생각은 지금의 프로젝터와 같은 장치를 이용해 각각의 사진에 빨강 초록 파랑의 불빛을 비춰서 사진을 재생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아이디어뿐인 그 장치도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는 최초의 컬러 사진을 후대에 남기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위의 오른쪽 완성된 사진은 최근들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복원된 사진입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의 황제였던 니콜라스 2세가 이 방식에 흥미를 가졌던 모양이에요. 프로쿠딘-골스키는 황제의 명으로 1909년부터 1915년까지 러시아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의 사진기를 통해 수많은 컬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황제의 명으로 암실과 여러 장비가 탑재된 기차에 타고 11개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혁명 직전 격동기의 러시아를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상상으로만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컬러 사진을 찍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러시아 제국 정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프로쿠딘-골스키는 1919년 2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황제는 처형당했고, 공산정부가 들어서는 대 혼란이 있었습니다. 프로쿠딘-골스키는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1944년 파리에서 죽었습니다. 1948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그의 사진들을 구입했고, 2001년 유리 건판에 기록된 그의 사진들을 스캔하고 소프트웨어로 복원하여 전시회를 열어 그의 사진들이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전시를 기획한 미국 국회도서관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모두 디지털 기법을 이용해 복원된 사진들입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더 많은 사진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흑백사진기만 있던 1900년대 초에도, 러시아의 프로쿠딘-골스키(Prokudin-Gorskii)라는 화학자가 재미있는 방법으로 컬러 사진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 시대에도 RGB, 즉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을 합성해서 모든 색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는데, 이 원리를 이용해서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에 해당하는 흑백사진을 각각 찍고 세 사진을 합성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거지요.
프로쿠딘-골스키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특수한 필터를 고안했습니다. 빨강, 초록, 파랑의 색을 거르는 필터를 이용해 흑백사진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연속해서 찍는 것이지요. 노출시간이 긴 그 시절의 카메라를 이용해 쓸만한 이미지를 얻으려면 피사체가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정지해 있는 피사체를 상대로는 훌륭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겠지요. 그렇게 해서 찍은 것이 아래 왼쪽의 세 장의 사진들입니다. 이렇게 빨강, 초록, 파랑의 필터를 통해 찍은 세 가지 사진에 인위적으로 각각의 색을 입혀서 하나로 겹치면 맨 오른쪽과 같은 컬러 사진이 탄생합니다.
위와 같이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사진에 인위적으로 색을 입혀서 하나로 겹치면 오른쪽과 같은 컬러 사진이 탄생합니다. 포토샵을 다룰 줄 아시는 분들은 간단히 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프로쿠딘-골스키는 오른쪽과 같은 컬러 사진을 만들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에겐 포토샵도 없었고 -_- 그가 사진을 찍을 무렵에는 지금과 같은 색깔을 내는 감광제가 없었겠지요. 그의 생각은 지금의 프로젝터와 같은 장치를 이용해 각각의 사진에 빨강 초록 파랑의 불빛을 비춰서 사진을 재생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아이디어뿐인 그 장치도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는 최초의 컬러 사진을 후대에 남기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위의 오른쪽 완성된 사진은 최근들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복원된 사진입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의 황제였던 니콜라스 2세가 이 방식에 흥미를 가졌던 모양이에요. 프로쿠딘-골스키는 황제의 명으로 1909년부터 1915년까지 러시아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의 사진기를 통해 수많은 컬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황제의 명으로 암실과 여러 장비가 탑재된 기차에 타고 11개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혁명 직전 격동기의 러시아를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상상으로만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컬러 사진을 찍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러시아 제국 정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프로쿠딘-골스키는 1919년 2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황제는 처형당했고, 공산정부가 들어서는 대 혼란이 있었습니다. 프로쿠딘-골스키는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1944년 파리에서 죽었습니다. 1948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그의 사진들을 구입했고, 2001년 유리 건판에 기록된 그의 사진들을 스캔하고 소프트웨어로 복원하여 전시회를 열어 그의 사진들이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전시를 기획한 미국 국회도서관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모두 디지털 기법을 이용해 복원된 사진들입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더 많은 사진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닐로바 수도원의 풍경 (1910년)
토볼스크의 풍경 (1912년)
농촌의 소녀들 (1909년)
부카라(당시 러시아의 영향 하에 있던 이슬람계 중앙아시아 소국)의 에미르(지도자의 명칭) (1911년)
멜론 파는 사람 (1911년)
한 작은 마을에 있었던 온천 (1907-1915년 사이)
공장 내부의 발전기 (1907년-1915년 사이)
운하의 갑문을 지키는 노인 (1909년, 물에 어리어리한 색깔이 비치는 것은 각 원색이 찍힌 시점 차이 때문에 생긴 거라고 합니다.)
스몰렌스크의 한 성당 내부 (19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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