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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안녕, 프란체스카 2005/03/14
  10. 다리아 (1) 2005/03/03

머니볼

from 감상/영상물 2011/11/24 01:00
이것은 자기모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원작 <머니볼: 불공평한 게임을 이기는 기술> 은 소설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저예산의 가난한 팀 중 하나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경기를 꾸려나가는가에 관한 보고서에 가깝다.

그러나 주연 브래드 피트가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는, 지독하게 냉정하고 또 감상적인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일반 관중에게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존재 가운데 하나일 터인 "단장"(General Manager)이라는 직위는 어떤 선수에게 얼마의 연봉을 주고 데려올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영화의 소재는 야구가 아니다. 야구에서 가장 재미없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선수들의 연봉과,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메이저리그의 30개 팀 가운데 가난하기로는 두세번째를 다투는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팀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져온 도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제학이다. 실력에 비례해서 연봉이 결정되는 야구판이지만, 기존 스카우터들은 타율이나 방어율 등 전통적인 통계수치를 가지고 선수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었다. 빌리 빈은 이런 관행을 깨고, OPS라는 저평가된 수치를 바탕으로 선수를 사모으기 시작한다.

OPS는 출루율+장타율을 의미한다. 이 수치는 이론적으로 팀이 한 회에 낼 수 있는 평균 점수에 직결되어 있다. 장타율이 높은 선수는 기존에도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으나, 출루율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었다. 사구나 볼넷으로 출루하는 경우도 출루율에 포함되기 때문. 그러나 출루율이 높은 선수는 야구에서 가장 귀하고 늘릴 수 없는 자원인 아웃카운트를 소모하지 않으며 득점확률을 올릴 수 있고, 또한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려 체력을 소모시키게 된다. 또한 볼을 골라내는 선구안이 좋은 타자들이 출루율이 좋은데, 선구안은 훈련으로 쉽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 아니므로 좋은 타자의 재목을 나타내는 수치가 된다.

그러면 이 영화는 일부 야구팬들이 열광하는 야구의 통계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출루율은 그저 "경제적으로" 저평가된 수치일 뿐 만능의 수치가 아니며, 영화는 그 수치를 그다지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수많은 숫자가 흘러가지만 그저 맥락이 없는 무의미한 잡음일 뿐이다.

영화가 상영시간 내내 보여주는 것은 빌리 빈이 싸우고 고민하고 협상하는 장면이다. 선수들의 연봉 총합이 뉴욕 양키즈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위 팀으로 올려놓기 위해 그는 차가운 냉혈한처럼 행동한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가장 좋은 선수를 뽑으려면 팀의 기존 스타 선수는 비싼 값에 팔고 그 돈으로 저평가된 유망주들을 사들여야 한다. 팀에서 키워낸 선수들을 계속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야구경기를 보지 않는다. (실존인물 빌리 빈도 경기를 관람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가 끝까지 밀어붙인 방식으로 팀이 승승장구할때 언론이 그 공을 자신이 아닌 감독에게 돌려도 개의치 않는다. 입버릇처럼 "이래서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 하고 얘기하지만, 감독과 신나게 말다툼하고 난 뒤에 나오는 대사라면 아무래도 진심은 아닌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하기는 하는 것인가. 애초에 왜 이 게임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인가.

이것은 루저에 관한 이야기다. 

패배는 개인적인 것이다. 돈으로 승자가 결정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게는 패배이다. 그러나 그가 게임을 바꾸기 위해 선택한 수단 또한 돈이다. 가장 적은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서 승리함으로서, 그는 게임 그 자체를 바꾸고자 했다.

오클랜드는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수위의 성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1승당 가장 적은 돈을 들여 효율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니, 단장으로서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것은 "마지막 경기" 뿐이다. 오클랜드는 2002년에도 5번째 경기에서 패배하여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자, 빌리 빈은 그것을 개인적인 패배로 받아들인다.

야구를 즐길 줄도 모르고, 이길 줄도 모르고, 그저 경제적으로 수행할 줄만 아는 빌리 빈은 왜 메이저리그에서 두번째 부자 구단인 보스턴 레드 삭스의 250만 달러 연봉을 수락하지 않고 오클랜드에 남았는가. 그야, 긍지를 가지고 패배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누구도 합목적적이고 합리적인 우주를 가질 수는 없다. 이 우주에 궁극적인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지막 경기"에서 패할 때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밖에.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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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코드

from 감상/영상물 2011/05/16 17:49
 오랜만의 영화 리뷰입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안보는데 그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동네 영화관에 있습니다. CGV의 상영작 선택은 항상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CGV 상영관은 그 중에서도 좀더 재미없는 영화를 틀어주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상영관은 8개나 되는데 말이죠.

 소스코드는 여러가지 장르가 혼합된 영화입니다. 한가지 장르에만 충실한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겠지만서도 이 영화는 기존 장르물의 여러가지 소재를 이어붙여서 만든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반복되는 시간을 소재로 한 서스펜스물, 주로 두 남녀의 대화로 구성된 로맨틱 코미디,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하는 가상현실 SF, 그리고 시간여행과 평행우주론 SF에서 흔히 보이는 아이디어도 몇가지 가져옵니다.

 미국 육군의 헬리콥터 조종사 콜터 스티븐스 대위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통근열차 안에서 깨어납니다. 앞자리에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 있는데 이 여자는 주인공에게 아는척을 해요. 그런데 이 여자는 주인공을 콜터가 아니고 "션"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주인공은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는 관객들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죠. 정신이 나간채로 열차 안을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뻥"! 폭탄이 터지고 스티븐스 대위는 사망합니다. 끝.



 ...이 아니고 다시 깨어난 주인공은 이번에는 알 수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깨어납니다. 자신은 방 안에 단단히 묶여 있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모니터 너머에 앉아 있는 콜린 굿윈이라는 공군 장교 뿐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상황이 좀더 자세히 밝혀지죠. 주인공 콜터 스티븐스에게는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 들어가 폭탄테러범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죠. 프로그램 안에서 그는 폭탄테러의 사망자인 션 펜트리스의 기억을 대신 체험하게 되며, 프로그램 안에는 여러번 다시 들어가볼 수 있지만, 주어진 시간은 폭발로 사망하기 직전의 8분 뿐입니다. 8분 안에서 약간씩 달라지는 사건들을 겪으며 주어진 시간을 계속 다시 체험하게 되는 것이죠.

 이야기는 3개의 공간 안에서 전개됩니다. 하나는 콜터 스티븐스가 폭탄테러범을 찾아내고 연애도 하며 덤으로 사람들도 구해냈으면 하다가 죽어버리는 시카고 통근열차 안, 하나는 굿윈 대위와 대화하는 방 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굿윈 대위와 "소스코드"라는 시스템을 발명한 러트리지 박사가 있는 연구실입니다. 2011년과 큰 기술적 차이가 없어 보이는 배경에서 (스마트폰마저 좀 옛날 모델인 것 같아요) 이런 충격적인 기술적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양자역학이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뭐 자세한 설명이 꼭 필요한건 아니긴 하죠.

 이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간쯤에 밝혀지는 정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가려둡니다.

스포일러 보기


 ps.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과거를 체험하는 아이디어는 <퀀텀 리프>라는 작품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저는 못 본 작품이라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패러디가 몇가지 등장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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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 예매권이 남는데! 볼 영화가 너무 없어서! 별다른 기대 없이 <2012>를 보고 왔습니다. 여기저기 불쾌한 포인트가 많았고, 너무 쉽게 사람을 죽이는 영화라는 점이 좀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고 나와서 애인님과 신나게 씹는(?) 재미가 있었으므로 만족.

*  언제나 실망을 주지 않는 존 쿠삭(큐색이라고 읽어야 하나?)이 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으로 나옵니다. 주인공이 SF 작가라는 건 의외로 참신하군요. 자연재해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니만큼 대단히 어려운 연기보다는 대단히 어려운 운전기술을 보여주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주어진 역할 내에서 최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  영화에서 제일 스펙타클한 장면은 지진이 마구 일어나는 영화 중반에 다 나옵니다. 초반은 좀 서론이 쓸데없이 긴 감이 있고 후반은 좀 창의성이 떨어지더군요. 그 와중에 펼쳐지는 주인공 잭슨의 말도 안되는 운전기술이나, (안팔리는 SF 작가라서 부업으로 리무진 운전기사를 하고 있다는 설정) 주인공의 전처의 새 남편 고든의 말도 안되는 비행기술은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뭐 스펙타클을 보여주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특히 마구 갈라지는 땅의 틈새를 날아가는 경비행기와, 그 위로(!) 날아가는 지하철의 오버랩 같은 묘사는 실로 참신합니다.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이 비행기 위로 날아가는 장면 같은 것은 이런 헐리우드 영화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었겠지요.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갑자기 거대 화산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장면도 멋졌구요.
 그러나 몇 개의 창의적인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지루한 편입니다. 관광명소들이 무너지는 거나, 거대한 해일 같은 건 <딥 임팩트>에서 다 본 거고... 대도시가 물에 잠기는 장면은 감독 본인의 전작인 <투모로우>에서 다 본 거고...

* 영화는 대단히 종교적입니다. 물론 세계멸망을 그리는 영화에서 종교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은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더군요. 일단 아주 대놓고 나오는 (스포일러)노아의 방주 라던지, 세계 멸망 직전에 미국 대통령이 한다는 소리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던지, 시스티나 대성당(바티칸 교황청의 주 회당)에 모여서 기도하다가 죽는 이탈리아 총리라던지, 시스티나 대성당의 그 유명한 천정화 <천지창조>에서 아담의 손가락과 신의 손가락 사이가 지진으로 쩍 갈라진다던지... 뭐 그런것들. 아. 리우 데 자네이루의 구세주 예수상도 박살나더군요. 음...

바로 이 그림


*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니... 음...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재미납니다. 졸업작품이자 감독 데뷔작은 <노아의 방주 원리>라는 SF군요. 별로 관심없는 감독이라 몰랐는데 <스타게이트>를 감독했고, 망했지만 미국판 <고질라>도 감독했고, <인디펜던스 데이>랑 <투모로우> 감독한 건 알고 있었고... 이 감독의 자연재해 SF에 대한 사랑은 거의 집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_-

* 미국 대통령이 흑인인 점이라던지, 영국 여왕을 암시하는 인물이 스쳐지나간다던지, (사실 전에 애인님과 함께 영화 <The Queen>을 봤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는 암시였습니다.) 터미네이터 주지사님을 암시하는 인물이 방송에 나온다던지... 등등 현실정치에 대한 상당히 직접적인 묘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정치에 대해 직설적인 풍자를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너무 위험한 시도라고 생각한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겸 불평.


* 총평하자면, 볼 것은 많지만 2시간 30분의 분량에 비하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제작진의 너무나 헐리우드적인 사람차별이 짜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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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ct 9 리뷰

from 감상/영상물 2009/11/01 15:13

1982년 어느날, 머나먼 외계에서 거대 우주선이 날아왔습니다. 아... 이런, 흔하디 흔한 SF의 도입부로군요. 뉴욕이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났다는 것만 빼면 그대로 [인디펜던스 데이] 도입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선이 두 달 가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떠 있습니다. 지구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침략전쟁을 걸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하고 신경 끄기엔 인간은 너무나 호기심이 많은 생물이죠. 처음에는 긴장하여 상황을 지켜보던 남아공 정부는 결국 대형 토치로 -_- 우주선에 구멍을 뚫고 내부에 진입합니다. 내부에 진입한 남아공 군대가 발견한 것은, 식량 부족으로 기아 상태에 허덕이고 있는 우주 난민이었습니다.

지도부가 전염병으로 멸망하여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잃어버린 외계인들은 지구인들과 친교를 맺는다거나, 지구를 정복한다거나 등의 계획 따위는 없어 보입니다. 이들 각자의 힘은 사람을 휙 집어던질 수 있을 정도로 세지만,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 외에 딱히 대단한 지능을 가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각자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뒤져 고무 타이어, 고양이 사료 (이들은 고양이 사료를 미친듯이 좋아합니다. 무슨 마약을 찾는 것 같아요.) 등의 먹을것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폭행하는 등의 소동을 일으킬 뿐입니다.
덕분에 외계인들은 요만큼도 신비스럽다거나,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거나 하지 않고 그냥 혐오스러운 홈리스 집단으로 묘사됩니다. 생긴것도 무슨 촉수 달린 거대 메뚜기마냥 끔찍스럽게 생겼죠. 결국 요하네스버그 시민들은 이들을 프론(새우를 가리키는 영어인데, 남아공에서는 이렇게 생긴 벌레를 프론이라고 하기도 한다는군요.)이라고 부르며 추방 운동을 벌이기에 이릅니다. 이들이 격리수용된 장소의 이름이 제 9 구역, 즉 district 9 입니다.

27년이 흐르고, 요하네스버그 시내 한가운데의 district 9은 치안능력을 상실하고 슬럼화된 상태입니다. 시민들의 불만의여론이 높아지자 남아공 정부는 이들을 새로운 수용 구역인 district 10으로 옮기려 하는데, 여기에 남아공 정부의 대리자격으로 MNU라는 다국적 군수기업이 투입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비커스 판 데 메르버라는 이름의 좀 어리버리해 보이는 MNU 직원으로, 어영부영하다가 이 계획의 책임자 자리에 앉게 됩니다. MNU의 높은 자리에 비커스의 장인이 앉아 있는 것도 아마 한 몫 했겠지요. 이제 비커스는 MNU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주민들의 이주 동의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치안부재상태가 된 디스트릭트 9에 진입했다가, 의문의 사고를 당합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 과정을 인터뷰와 뉴스 영상을 편집한 가짜 사회고발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짧게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근래 본SF영화 가운데 제일 신선한 도입부가 아니었나 싶네요. 사실 항성간 항해가 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외계 우주선의 수뇌부가 고작 전염병으로 전멸해도 되는건가? 하고 묻고 싶기도 하지만, 설정은 어디까지나 설정이니까요.

이 영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고 해요. 남아공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국내 사회문제를 풍자하는 SF 영화라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괴물]을 보는 우리의 시각과 외국 관객들의 시각이 다른 것처럼, 우리도 결고 남아공 관객들이 보는 것처럼 이 영화를 바라볼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남아공의 정치상황에 대해 거의 모르고 관람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고 영화가 보고 싶어지셨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가시면 되겠습니다.


디스트릭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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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SF적인 요소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정하고 가족적이며 깔끔하지만 큰 모험은 하지 않는 안전한 멜로물이었습니다. SF 보다는 멜로에 집중하기 위해 설정을 가지고 많은 장난을 치지 않은 것도 조금 아쉬웠지만,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도 높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영화가 좀 심심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원작이 필립 K 딕 소설이었다면 자유의지와 운명에 관한 엄청나게 복잡한 이야기였을 테고, 만약 그랬다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멜로 파트를 제외한 다른 얘기가 다 삭제되었겠군요. 그냥 이런 스타일인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두 배우의 연기가 워낙 좋고 아역들도 연기가 출중해서, 감독이 주인공 커플을 카메라에 담는데 집중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전작 노트북에서도 그랬지만 참 표정이 좋군요. 에릭 바나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더니 이안 감독판 헐크의 닥터 브루스 배너 역이더군요! 굉장히 고전적인 캐릭터가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캐스팅이었어요.

간만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멜로물이었습니다. "운명적인 사랑" 따위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내심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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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웃기긴 한데 그에 비해 뒷맛이 많이 지저분한 영화였습니다.
애인님의 말에 따르면 "좋게 봐주기엔 너무나 걸리적거리는 것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스포일러따위는 전혀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의 축을 관통하는 것은 "동방의 빛"이라는 대형 다이아몬드입니다.
근데 다이아몬드라는게 땅속에서 그 모양 그대로 잠들어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그런 모양으로 세공된 보석이 1000년전 신라시대 물건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참고로 작중에서처럼 원뿔형으로 깎는 스타일의 커팅은 20세기 유럽에서 나온 디자인입니다. 아무리 높이 잡아도 15세기 이전에는 다이아몬드를 "위는 편평하고 아래는 뾰족한" 형태로 커팅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동방의 빛" 전형적인 20세기 브릴리언트 컷 형태입니다. 누가 이렇게 생긴 다이아몬드를 들고 와서 천년 전 물건이라고 구라쳐도 속지 맙시다.



그리고 두 형제가 열차를 폭파한다면서 들고 나오는 대전차 로켓포.
이건 뭐 2차대전중에 발명된 물건이니 해방직전의 시대배경에서 등장하는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독립군은 이 보병용 대전차무기를 대체 어디서 구한걸까요. 일본군 전차와 싸울 일이 있었나...

뭐 이런 사소한 신경쓰이는 점을 제외하면 그냥 박용우의 노련한 어설픔(?)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컨셉과 플롯이 막 꼬이는 영화긴 한데... 인터넷 기사를 뒤져보니 처음엔 그냥 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려다가 뒤늦게 해방직전으로 시대배경을 옮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군요. (하긴 그도 그럴 것이 30년대 말부터 태평양전쟁 하느라고 한창 물자 부족했던 일본이 동방의 빛 어처구 하는 보석에 신경쓸 여유도 없을거고 일본인들만 드나든다는 미네르바라는 술집도 그렇게 성업하기는 힘들었겠죠. 애초부터 30년대를 염두에 둔 배경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말이 됩니다. 아니라면 그냥 허술한 설정이구요.)

정용기 감독은 (가문의 위기/가문의 부활 시리즈 감독이랍니다) 이 컨셉 저 컨셉 다 갖다붙이다 좋은 배우들 고생시키는 일은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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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프란체스카  (0) 2005/03/14
어쩌다보니 말많은 심형래씨의 작품 "D-War"를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습니다. 보기 전엔 별로 할 얘기가 없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쓸 얘기가 많이 생각나네요.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스포일러라 할만한 것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런이런 장면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조차 스포일러로 간주하시는 분들은 아래 글은 안 읽으시는 것이 좋겠네요.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영화 개봉하기 전에 워낙 욕이 많아서 좀 걱정했는데 뭐 그냥저냥 평범한 (그러나 극장에서 챙겨보지는 않을) 헐리우드 영화 시나리오더군요. "반 헬싱"보다는 낫고 "슈퍼맨 리턴즈"보다는 재미없는 정도? 보다가 시나리오가 너무 엉망이어서 화가 나는 정도는 아닙니다. 평균적인 헐리우드 영화들과 다른 점은 플롯에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연기 지도가 부족해서인지 배우들의 연기도 실망스럽다는 점인데... (연기 질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들쭉날쭉하는 걸 보면 배우의 자질 문제는 아닌 것 같더군요) 뭐 시나리오가 재미없으면 개연성은 있으나 없으나 연기력도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연출가로서 심형래의 눈은 전성기 때 찍던 우뢰매 정도에서 큰 발전이 없는 것 같더군요.

다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개그 신과 자기 패러디(Sim's Zoo 라던가...)는 나름 괜찮았는데요, 이 부분은 역시 개그맨으로서의 그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차라리 좀더 대놓고 개그를 해주었으면 나름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괴수영화, (심 감독은 SF라고 하지만 사실 SF는 아니죠) 그것도 "킹콩"과 "고질라"류의 대괴수 대도시 대난동 -_- 영화입니다. 누가 이런 영화에서 안정적인 플롯이나 참신한 개그를 신경쓰나요. 주인공은 바로 괴수지요. 그 주인공 괴수인 이무기가 어땠냐 하면... 저는 썩 만족스러웠습니다. 일부러 구름으로 가리는 연출을 해서 세세한 질감이나 그림자 등이 좀 가리긴 했지만, 대낮에 LA 시내를 쏘다니는 이무기는 장대하기도 했고, 디테일도 훌륭한데다, 이무기가 난동을 부릴 때 보여주는 액션감도 그럴싸하더군요. 거대한 크기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의외로 이무기보다는 조그만 부하 괴물들이었어요. 포를 쏘는 스테고사우르스 같은 괴물은 꽤나 귀여웠어요. "불코"라는 익룡을 닮은 괴물들이 헬기와 전투하는 장면의 액션감은 불만이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괴물들과 탱크와의 대치 신에서는 서로 포를 쏘는 전투보다는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을 강조하는 편이 영화적으로는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좀 아쉽더군요.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특수효과가 A급으로 훌륭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관객에게 몰입감을 가져다주는 잘 만든 특수효과가 아니라 아 공을 많이 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잘 만든 CG였어요. 괴물의 텍스처도 훌륭하고, 운동감과 액션감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지만, 아까도 말했던 대로 괴물의 중량감이나 현실감은 훨씬 떨어졌습니다.

비현실적인 대괴수가 현실적인 대도시를 파괴하고 다니는 이런 영화에서 정말로 공을 들여야 하는 특수효과 괴수보다는 그 괴수에 의해 파괴되는 도시와 물건과 사람들입니다. 괴수의 묵직한 중량감은 괴수 그 자체의 모양보다는 그에 의해 파괴되는 주변 물체들이 어떻게 부서지는가가 더 크게 좌우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괴수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그 괴수 자체가 현실적으로 생겼느냐보다는 그 괴수가 부수고 휩쓸고 다니는 주변 사물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보이고 현실적으로 부서지냐가 더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지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배경적 요소들이 괴물 자체와 잘 동화될수록 그래픽의 현실감은 증폭되는데, "D-War"는 이런 부분에 많이 신경쓰지 못한 티가 역력했습니다. 이무기가 밝은 대낮에 공포를 뿌리며 시내를 질주했어야 할 장면은 공포보다는 폭염과 연기를 더 많이 뿌리느라 이무기의 모습을 많이 가렸고요, 이무기가 고층빌딩을 휘감고 여러대의 헬기와 싸우는 장면은 정작 대도시 시퀀스의 하이라이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헬기 한 대 물어서 바닥에 동댕이치는 데서 시시하게 끝났습니다.

인간들이나 적군 보병인 아트록스 부대들이 나오는 부분은 솔직히 좀 실망이 컸는데요... CG의 질을 논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좀더 세련되어진 우뢰매 특수효과라는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뭐 이 영화에서 매트릭스 같은 액션을 기대한 건 아니니 그 부분은 넘어갑시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 신에 배경이 되는 건물은 사실적인 질감에 자신이 없었는지 블러 처리한 티가 너무 심하게 났는데... 물론 중요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니어처를 세심하게 만드는 편이 차라리 돈은 덜 들여도 더 좋은 효과가 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점은 이런 류의 괴수영화에서 응당 기대해야 할 서스펜스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겠지요. 이런 영화에서 괴수 자체의 액션보다는 그 거대한 괴수가 인간들에게 가져다주는 액션과 서스펜스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훌륭한 서스펜스를 주는 장면은 사실 없었습니다. 심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 "쥬라기공원"과 비교를 하시면서 그 영화에 무슨 훌륭한 스토리가 있냐 하셨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스필버그를 너무 과소평가하셨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저 멀리서 쿵...쿵...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주는 긴장감,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잘 못 본다는 그 거대한 공룡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냄새를 맡을 때 꼼짝도 못하고 덜덜 떨어야 하는 인간들의 그 공포감, 사람보다 조금 큰 뿐이지만 재빠르고 영리한 벨로시랩터가 두 발로 도약할 때의 액션감. 그런 것들과 비교하기엔 이 영화는 좀 무리가 많습니다. 괴수영화는 그냥 돈을 많이 들인 액션영화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영구 아트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자 심 감독의 첫 대작인 이 작품을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이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킹콩" 같은 걸작들과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공평하겠지요. 좀 아쉬운 부분은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썩 마음에 드는 특수효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이 영화가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선한 이무기가 "드래곤"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으로 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림으로만 봤던 상상 속의 용이 실제로 움직인다면 저렇게 움직이겠지... 하고 생각했던 그 모습이었어요. 이 영화를 지뢰 제 2호라 쓰지 않고 이렇게 길게 아쉬운 점을 잔뜩 늘어놓은 것도, 바로 그 이미지가 보여준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냥 징그럽고 커다란 이무기가 아니라 강력하고 아름다운 용이었어요. 이런 B급 괴수영화 플롯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아쉬울 정도로... 선한 이무기가 그렇게 뜬금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감정이입할 기회를 주고 주인공으로서 얘기를 풀어나갈 자리를 주었다면 더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겠지요. 그랬다면 그 용의 모습에 관객들도 감동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을 텐데 말이예요.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하자면, 감독 심형래에게는 C를, 제작자 심형래에게는 A를 주고싶은 영화였습니다. 제작은 심형래씨가 맡고, 연출은 그냥 특촬물 한두개 찍어본 무명 감독에게라도 던져주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CG는 훌륭하지만 특수효과는 아쉽고, 괴수는 훌륭하지만 연출은 아쉬운... 아쉬운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p.s. 영화와는 별개로, 인간 심형래가 언론에 하고 다니는 말들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충무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진 것은 알겠지만, 그렇게 다른 영화와 다른 사람들을 까내리지 않아도 성공할 영화는 성공하고 실패할 영화는 실패합니다. 제가 들은 건 아니지만 그래픽 쪽 연구하는 석사 박사들 모아놓고 세미나 하면서도 연구자들 깔아뭉개는 얘기를 했다는 소문이 연구실에서 들리더군요. "D-War"가 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쏟아지는 악평은 그런 발언 탓도 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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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

from 감상/영상물 2005/07/16 03:20
드림웍스는 이제 진짜처럼 보이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따위 만드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해가 멀다하고 그럴듯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연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지만 공들인 작품이 이렇게 자주 나올 정도로 제작이 쉬워졌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그래도 슈렉은 재미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마다가스카를 보러 갔습니다.

아래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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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from 감상/영상물 2005/03/03 10:01
'Daria'는 MTV 애니메이션 Beavis & Butthead의 성공적인 스핀오프 시리즈(그 어느 나라보다도 TV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성공적인 시리즈의 조역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원작의 인기를 이용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걸 spin-off라고 부르지요.)입니다. B&B에 종종 등장하는 조역 캐릭터였던 다리아가 물밑에서 팬들의 인기를 끌자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출발시킨 것이죠. 국내에서도 5개 시즌 가운데 1, 2 시즌을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케이블을 시청하지 않습니다만 중고등학교 무렵엔 열렬한 시청자였지요. 국내 팬층은 고사하고 미국에서도 아직 DVD가 출시되지 않았을 정도로 무지무지하게 마이너한 시리즈였지만, 그래도 웹을 검색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강렬한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Beavis & Butthead를 보셨거나, 이 시리즈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기괴한 취미를 가진 주인공들이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멍청함을 과시하는 듯한 등장인물들과 함께 벌이는 그 요란한 블랙 코미디의 맛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미국 애니메이션에서도 기대할 수 없었던 신선함으로 MTV 팬들을 휘어잡았습니다. 다리아가 이 난장판같은 애니메이션에 처음 등장하여 맡은 역할은, B&B와 함께 과학 실험을 하게 되자 두 주인공을 주제로 삼아 '인간의 멍청함'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역할인데,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애니메이션에서 이정도로 B&B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캐릭터는 정말로 드뭅니다. (물론 B&B가 항상 다리아에게 당하고 지낼 정도로 어수룩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 제작진들 스스로도 이런 캐릭터는 신선했던 모양이죠.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한걸 보면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여자들에게 되도 않는 느끼한 대사를
날리는 남자 Upchuck과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리아
그녀의 냉랭한 시선이야말로 이 애니메이션의 핵심입니다
출처는 다리아 팬사이트 중 하나인 Daria, Daria, Daria


B&B와 마찬가지로 다리아도 기괴한 캐릭터들의 진열장같은 난국을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러나 기괴한 캐릭터들 가운데서도 탁월하게 멍청하고 기이한 캐릭터인 Beavis & Butthead와는 달리, 다리아는 어두침침한 취향, 탁월한 두뇌회전, 형편없는 패션 센스, 그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 세치 혀를 가진 독설가이기는 해도 어쨌건 이 난국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둘러싼 사회는 미식축구부, 치어리더, 패션 클럽, 지루한 선생들, 답답한 가족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녀는 이 복마전의 한가운데서 때로는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고 때로는 곤경을 타파하기 위해 분투하기도 하며 (분투라고는 해도 그다지 열내며 싸우지는 않지만) 때로는 애청하는 TV 프로그램인 'Sick Sad World'와 함께 그 지옥을 조금씩 즐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드보일드(!)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진정 빛을 발하는 순간은 오히려 캐릭터에 대한 제작진들의 애정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여고생 버전의 필립 말로우같은 드라이한 유머를 구사하는 다리아도 지긋지긋한 음악 캠프에 다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봉사활동 점수를 쌓아야 하고 유일한 친구인 제인의 곤경을 함께 걱정하기도 하며 제인의 오빠 트렌트를 만날 때는 평소의 시니컬함은 다 잊어먹은 채 얼굴만 붉히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한번씩 만난 것처럼 친숙한 조역 캐릭터들도 비록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 있지만 그 나사가 늘 한결같이 빠져 있으면 거부감보다는 묘한 친밀감을 부르는 법입니다. 다리아의 시니컬한 인물평도 그녀의 메마른 유머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을 때 가장 유쾌하게 울립니다.

다른 어떤 작품과도 비교를 거부하는 MTV 애니메이션들은 여전히 매니아들의 열렬한 성원 아래 제작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다리아같은 작품이 또 나올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저는 아무래도 앞으로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처럼 구는 다리아 전 시즌 DVD를 기다리며 살아야 할 모양입니다.

MTV의 다리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tv.com/onair/daria
에피소드 가이드와 대본을 볼 수 있는 팬페이지 - Outpost Daria
다리아를 DVD로! - DVD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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