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가끔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악몽을 꾼다.
조각가인 동문 선배가 설계했다는 학교 건물은 나무로 된 부분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였지만, 채광과 환기가 좋지 않아서 어둡고 습했다. 나와 친구는 건물을 건축을 안하고 조각을 했으니 이따위지 하며 비웃었다. 선생들은 애들이 기침을 해서 시끄럽다며 패고 편두통이 있어 짜증난다며 패고 선생에게 인사를 안 해서 버릇이 없다며 팼다. 그분에게 다음날 등교길에 인사를 하면 코끝 하나 끄덕이지 않았다. 아, 물론 성적이 나쁠 경우 더욱 많이 팼는데 그 무렵엔 그게 아주 조금 더 정당한 체벌이라고 믿었다. 나는 구면 거울에 반사되는 평행 광선은 한 초점에 모이지 않는다는 걸 물리 선생에게 설득하려 했다가 개무시당한 이후로는 수업내용에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남자고등학생들이란 점심시간 1분전이 되면 초원을 달리는 물소떼들이 낼 법한 두두두두 하는 땅울림 소리를 내며 식당으로 달려가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제일 천천히 걸어가 제일 늦게 배식을 받은 다음 제일 늦게 식당에서 나왔다. 급식에는 미역국과 북어국과 콩나물국 등의 다양한 메뉴가 번갈아가며 나왔지만 불가사의하게도 맛은 항상 똑같았다. 식당 주인 겸 매점 주인 겸 이사장의 사촌동생은 1700원짜리 학교 지정 넥타이를 사고 2000원을 내면 가끔 500원짜리 세개를 돌려주는 정신빠진 사람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만 두번이나 자가용을 갈아치웠다.
남자애들이 제일 오랫동안 진지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주제는 내친구의형의동생의아는사람이 들은 신뢰할만한 소문에 의하면 누구누구가 누구누구랑 잤다더라 하는 얘기가 아니면 포르노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었고 나는 그런 얘기에 관심 없는 척 하기 위해, 혹은 가끔은 정말로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그 지루하고 좁고 작은, 별로 고통스럽지 않은 지옥 속에서 나는 라디오헤드와 전람회와 류이치 사카모토와 이상은과 스매싱 펌킨스와 데이빗 보위와 패닉을 들었다. 어떨 때는 혼자 있고 싶어서, 어떨 때는 이 모든 것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고 싶어서 들었지만, 대개는 그냥 좋아서 들었다.
패닉은 1집의 [달팽이]와 [왼손잡이]가 제일 많이 팔렸고, 곡 자체는 3집이 더 세련되었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 패닉의 전성기는 2집이었다.
insomnia.wma - pa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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