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책과 만화'에 해당되는 글 5건

  1. 황석영씨의 인터넷 연재소설 (3) 2008/03/02
  2.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아홉번째 감상 (1) 2005/03/27
  3. 데스노트 (3) 2004/11/15
  4. 에반게리온 9권이 나왔습니다. (2) 2004/08/20
  5.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 2004/06/17
소설가 황석영씨가 무려 네이버 블로그를 열고 인터넷에서 새 연재소설 집필을 시작하셨습니다.
애인님이 알려주어서 가보았어요.
처음 2회 정도 분량이 연재되었는데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네요.

황석영 같은 대가의 작품을 실시간으로 RSS로 받아볼 수 있다니,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평소에 못마땅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연재를 제안한 네이버에 감사를 표합니다.
여러분도 찾아가 보세요.

추가 : 이번 연재에 관한 얘기가 들어있는 황석영씨의 인터뷰
로저 젤라즈니 중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아홉번째 완독하고 각 단편에 대해 남겨보는 감상입니다. 이 책이 뭐가 그렇게 좋아서 읽어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12월의 열쇠
고독한 인간이 어떻게 고독한 신이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 젤라즈니에게 SF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그가 천착하는 주제는 언제나 생명, 신성, 시간, 신화와 같은 기술과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죠. 주인공 쟈리 다크는 거의 전형성이 느껴질만큼 젤라즈니 주인공들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모아둔 인물입니다. 밀레니엄 단위의 시간을 휙휙 건너뛰는 건 SF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간격 사이에 행성에서 일어난 변화를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내는 재주는 역시 젤라즈니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재주입니다.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굉장히 호의적인 평에 비하면 약간 실망스러운 단편. 그래도 하드보일드한 문체 가운데 유독 팔팔하게 살아있는 문체로 그려지는 괴물 Ikky의 묘사는 정말 꿈에 나오지 않을까 싶을만큼 압권입니다.

악마차
SF 버전으로 쓰여진 30년대 서부극. 서부극은 취향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관계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마지막 문단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화성인. 고전 SF의 단골손님이자 B급 SF 영화의 주된 악역인 이들을 놀랍도록 아름다운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설픈 문어 외계인이 아니라, 현악기 반주에 맞춰 바람의 춤을 추며 사막 속의 도시와 종교건축물을 가진 이성적인 종족의 사라져가는 말예들입니다. 주인공 갤린저가 보여주는 독특한 면모들도 마음에 듭니다. 그 자신 천재 시인이기도 한 그는 화성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는데 지구의 온갖 작가들과 문헌들을 끌어다 쓰는데, 화성이 정말로 이런 곳이라면 비교문화학자들의 천국이 되겠군요.
중간에 나오는 '화성어의 완곡어법과 빙빙 돌려 말하기는 한국어를 능가할 정도였다'라는 문장에서 약간 놀라게 됩니다. 우리말은 외계어란 말인가 -_-

괴물과 처녀
정말로 기발하고 재기넘치는 두페이지짜리 장편(掌篇). 조금만 더 길었거나 작가의 재기가 부족했더라면 시시해질 수도 있었던 꽁트였겠지만, 두려워하는 듯한, 혹은 웅성거리는 듯한 묘사와 압축적인 비약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으시겠죠 -_-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꽁트입니다.

이 죽음의 산에서
우주에서 가장 높은 산에 도전하는 등반가의 이야기. SF에 등산이라니 약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산은 젤라즈니가 좋아할 만한 소재입니다. 산은 인간이 무한히 고독해질 수 있는 공간이고, 동시에 위로 위로 한발짝씩 다가갈 수 있는 곳이니까요.
'위대하고 강대한 자연력에 대해서 어떤 선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 산은 각자 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각자 불멸의 힘을 가지고 있는. 만약 당신이 그 사면 위에서 제물을 바친다면, 그 산은 당신에게 어떤 은총을 내려 주고, 한동안 당신은 그 힘을 나눠 가질 수 있을지도 몰라. 산이 나를 부르는 건 아마 그 때문인지도...'
젤라즈니에게 산은 그런 장소인 모양입니다.

수집열
역시 5페이지의 짧은 꽁트. 이쪽은 대화체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신선한 맛이 있긴 하지만 재기발랄한 면은 '괴물과 처녀'에 비해 떨어지는군요.

완만한 대왕들
정말로 유쾌한 꽁트. 이렇게 순수하게 유쾌한 SF는 스타니스와프 렘을 연상시키는 면도 없지 않군요. 행성을 지배(?)하는 정말로 '완만한' 두 분 대왕의 수천년에 걸친 통치(혹은 무위)의 기록입니다 -_-

폭풍의 이 순간
냉동수면을 거듭하며 행성과 시간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남자의 이야기. 처음엔 약간 저어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맛이 나는 중편입니다. 시간여행자의 '역마살'을 이만큼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은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단역으로 등장하는 소심하고 유치한 소시민적 캐릭터 척의 묘사도 이상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젤라즈니 작품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유형의 인물이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이런 생각만은 자주 하곤 한다. 혹시 언제, 어딘가에 나를 위한 황금 시대가, 르네상스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시대가, 단 한 장의 티켓, 단 하나의 비자, 단 한 장의 일기장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어디가 될지는 모른다. 누가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 문장은 볼 때마다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듭니다.

특별 전시품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예술가, 혹은 예술가를 보는 사회적 편견에 의해 약혼자를 박탈당한 연인인 두 남녀는 미술관에서 예술작품 그 자체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SF나 환상의 요소는 없지만 시니컬하고 풍자적이며 유쾌한 단편.

성스러운 광기
드물게도 감각적이며 환상적인 단편. 시간여행의 아이디어는 이제 SF의 장르적 장치들 가운데서도 가장 진부한 장치가 되었지만,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죠.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의 재기넘치는 묘사가 훌륭한, 신선한 느낌의 단편입니다.

사랑은 허수
앰버 연대기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 단편의 모양새가 익숙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앰버가 쓰여지기 수년 전부터 그의 머리속에는 앰버의 구상이 들어있었던 모양입니다. 익숙한 '헬라이드'의 묘사나 코윈의 원형으로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반가운 작품입니다.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
생명과 신성을 다루는 신화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단편. 건조한 사막 같은 계곡 안에서 죽음을 지배하고 있는 사이보그인 주인공과 사이렌의 다른 버전인 듯한 화이올리가 만드는 이야기는 정말로 그리스 비극의 한 장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루시퍼
모든 불빛이 정지한 잠든 도시에 돌아온 한 남자가 단 93초동안 도시의 옛 불빛과 그 영화를 되살려놓고 쓸쓸하게 돌아갑니다. 이 SF답지 않은 단편집 중에서 가장 SF적 성격이 강한 단편. 주인공은 마지막에서 딱 한번 아무도 없는 도시를 향해 대사를 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돌아갑니다.

프로스트와 베타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 남아 지구를 관리하는 컴퓨터 프로스트는 사라진 인간들의 유물로부터 인간의 흔적을 따라가다가 스스로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고전 SF의 냄새가 나면서도 어떤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입니다. 어쩌면 가장 좋아하는 SF 단편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어요. 젤라즈니도 이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는 말이 있지요. For a Breath I Tarry (숨결이 한번 스치는 동안 나는 기다린다) 라는 원제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
프로스트와 베타를 읽으며 불타오르고 나서 늘 진이 빠진 상태로 읽게 되는 단편 -_- 젤라즈니가 좋아할 만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판타지 문학에서는 이제 약간 식상해진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젤라즈니는 판타지에도 재능이 넘치는 작가지만, SF적 요소가 완전히 빠져버리면 좀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요.

데스노트

from 감상/책과 만화 2004/11/15 18:26
제가 퍼즐 추리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귀찮기 때문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증거물과 알리바이들의 빈틈을 찾으며 혹시 이런 트릭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추리 독자의 기쁨일지도 모르지만, 머리가 나쁜 저에게는 저런 것들이 도무지 알기도 힘들뿐더러, 솔직히 말해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심리트릭으로 이루어진 범죄 소설, 특히 복잡한 거짓말 위에 다시 거짓말을 덮어씌워 서로를 속이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즐겨 보는데, 오바타 다케시의 새 연재작 데스노트가 바로 이 범주에 완벽히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1권만 보고 '너무 흔한 설정 아닌가' 싶었습니다만, 뒤로 갈수록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군요.

스포일러 경고 - 내용 누설은 가능한 한 피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피하시길 권합니다.

1년에 한번씩 연례행사처럼 출간되는 사다모토 요시유키씨의 만화판 에반게리온. 올해도 9권이 등장했습니다. 제 친구 Y모군의 의견에 따르면 세상에는 작가를 독방에 가둬두고 만화만 그리게 해서라도 보고 싶어지는, 무지무지하게 느리게 나오는 만화들이 존재하는데, 이 에반게리온이 바로 그 목록에 들어갑니다. (물론 짐작하시는 대로 FSS도 목록에 들어갑니다 -_-)
원래는 TV판 1화가 방영된지 10년이 돼가는 작품이므로 전개를 얘기할 때 거리낌이 없어야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만화판 에반게리온의 전개는 뒤로 갈수록 애니메이션판과 약간씩 어긋나고 있으며, 특히 9권의 내용은 거의 치명적으로 다른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누설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여전히 캐릭터들은 수다스럽고, 레이는 도무지 레이같지 않으며 신지는 알게 모르게 소년만화 히어로의 정도를 걷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을 전해드립니다.
슬슬 종결부를 향해 치닫고 있는 만화가 End of Evangelion과는 상당히 다른 엔딩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 기대됩니다. 서드 임팩트의 전개나 거기서 신지가 맡는 역할 같은 거야 변함없겠습니다만, 카오루와 레이 2호의 선택이 궁금해지는군요.

그건 그렇고, 상당히 잘려나간 사도들이 많은데, 설마 아스카와 양산형 시리즈 간의 최종전투까지 잘리는 건 아니겠지요 -_-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은 작가에 대해 쓰는 것에 비하면 절망적으로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왜 좋아하는지, 그 중 무슨 작품이 제일 좋은지 등등 백 가지 쯤 되는 쓸 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써볼까 하면 그중 한 가지도 맘에 드는 게 없고 못마땅한 눈으로 모니터만 노려보게 되더군요.
그런 관계로, 오늘도 젤라즈니에 관해 열심히 써보려다가 결국은 지워버리고, 별로 안 좋아하는 작가인 아멜리 노통에 대해서나 써볼까 합니다. (그녀에겐 약간 미안하지만 -_-)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나쁜 습관 때문에 그녀의 책에는 손도 대지 않았더랬습니다만, 전부터 책 이름은 참 잘 짓는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적의 화장법]이나 [로베르 인명사전] 같은 제목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묘하게 주목을 끌더군요. 덤으로, 책의 뒷표지 사진을 보면 이 아줌마 약간 이쁘기까지 합니다. (나중에 속날개를 펴본 결과 그렇지도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만) 오호라. 구입 결정. 알라딘에선 일시품절이길래 학교 근처 서점에 직접 가서 사들고 와야 했습니다. 요즘 노통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예요.

별로 스포일러가 될만한 반전은 없습니다만 읽는 즐거움을 남겨두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는 생략하지요. 한번 끝까지 읽고 두번째를 한 반쯤 읽은 지금 감상을 얘기하자면 '수다스러운 소설가의 자살극'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에겐 할 얘기도 많고 그중 상당부분을 극중의 타슈를 통해 직설적으로 뱉어놓고는 있는데, 그 다음 부분에서 갑자기 애너벨 리의 변용인 듯한 도착적인 사랑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밑도끝도 없는 살인으로 얘기를 종결지어 버립니다. 여러가지 소재를 늘어놓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까지 만들어둔 다음 그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 그냥 등장인물과 함께 이야기를 '살해해' 버리는 기분이에요. 드래곤 라자 연재가 끝나고 나서 이영도를 비판한다는 사람들이 '엔딩이 그게 뭐냐'라고 할 때 팬으로서 참 가슴아팠는데, 지금 노통에게 똑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엔딩이 그게 뭔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극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주가 되는 노작가의 인터뷰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어서 결국 이 책을 두번 읽게 해주더군요. 인터뷰이인 작가가 독설과 횡설수설로 인터뷰어인 기자들을 가지고 놀다가 멍청한 기자가 자기의 심기를 건드릴 때쯤 되면 뻥 차버린 다음 뒷모습을 보며 낄낄거리고 좋아하는데 이 횡설수설의 가운데서 작가가 메타포에 대해 늘어놓는 설이나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한 설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맛에 사람들이 노통을 읽는 건가 싶어집니다.

결국, 책에는 조금 실망했습니다만 노통이라는 작가에게는 관심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조만간 이 블로그에 그녀의 책이 한두번 더 등장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