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from 단상 2004/11/14 23:23
글을 쓴다는 것은 허공에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허공에 주춧돌은 뭔가 어색하니까 그냥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기둥부터 몇 개 세워둔 다음 들보를 올린다. 거기에 서까래를 얹는데 이때 목재가 부족하면 기둥을 몇개 빼와서 채워넣어도 큰 상관은 없다. 서까래 위에 다시 지붕을 얹는다. 역시 벽체에 쓸 자재를 빼다가 지붕을 얹어도 무방하다. 어쨌든 지붕만 있으면 나머지는 큰 관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기둥이나 들보가 듬성듬성 빠지고 지붕만 남아있는 결과물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그것이 기둥과 들보 위에 올라서 있었다는 걸 잊어먹고 그 다음 집을 지을 때는 지붕부터 올리려 드는 것이다.

훌륭한 변명이란 모름지기 시작은 창대하고 끝은 미미해야 하는 법이다. 줄이면, 블로그질도 슬슬 귀찮아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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