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신작 이노센스를 오늘 영화관에서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원래부터 전작인 공각기동대를 좋아하는 관계로 일본 개봉 당시부터 단단히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걸작의 속편을 너무 기대하면 배신감만 안고 돌아오게 된다는 법칙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일단 DVD가 출시되면 한두번 정도 더 봐야 거장의 실망스러운 평작인지 아니면 감상자를 잘못 만난 걸작인지를 알게 되겠지만, 일단은 처음 보고 나서의 간단한 감상을 적어볼까 합니다. 대단치는 않지만 전개를 포함하고 있으니 작품을 보고 나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걸작의 속편은 어쩔 수 없이 전작과 비교되게 마련이고, 걸작이 아니더라도 전작과 독립적으로 속편만을 놓고 따로 논하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작을 보지 않은 감상자에게 상당히 불친절한 이 영화를 논하려면 전작과의 비교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전작은, 물론 다른 어떤 영화와도 비교하기 힘든 독특한 영화지만, 굳이 기존 장르에 비교해보자면 종교영화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 편견을 좀 섞어서 전작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소령은 인간이자 동시에 인형이었습니다. 인형의 몸을 가진 채 인간의 영혼을 소유한, 영문제목 그대로 'ghost in the shell'이었지요. 그런데 자신이 인간인지 인형인지를 놓고 전통적인 피노키오의 고민을 하던 소령은 영혼을 증명하는 유일한 물적 증거인 뇌 없이도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인형사의 흔적과 만나게 됩니다. 소령은 서서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귀찮은 짐인 육체를 벗어던지고도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인 인형사는 그런 소령에게 접근하여 육체를 얻음으로서 '죽음'을 얻고 또한 '삶'을 얻고자 합니다. 그리고 둘은 융합해 새로운 생명체가 되면서 덤으로 신성을 획득합니다.
그런데 속편인 이노센스에서 소령의 전 파트너였던 바토는 지금은 실종된 것으로 간주되는 소령이 밟았던 길을 그대로 밟게 됩니다. 이번엔 소령이 남긴 흔적들을 따라 바토가 서서히 소령에게 접근하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영화는 자연스럽게 전작과 닮은꼴의 이야기 구조를 취하게 됩니다. 실망스러웠던 점은 여기부터인데, 전작의 인형사-소령-바토의 삼각관계가 이번에는 소령-바토-토구사로 대치되면서 전작의 구성이 이번엔 '사라진 첫사랑을 찾는 남자'로 변질돼 버린 것입니다. 이 구도의 어색함은 소령과 바토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발생합니다.
소령은 철저히 자기완결적인 존재입니다. 소령은 신성을 획득했고, 신은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줄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지요. 게다가 인형사와 만나기 이전부터 소령은 자기의 존재를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내 고스트가 그렇게 속삭이는 거야'라며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의 정체를 찾았습니다. 제 짐작에 그것은 인형사가 소령에게 접근해온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소령의 이야기는 애초에 반신(半神)이었던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신이 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토는 그런 자기완결적이고 확고한 자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사이보그라도 여성과 남성의 차이일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건 그는 그의 애완동물로 나오는 오시이 감독의 유명한 개에게 자아를 투영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잊거나, 혹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있습니다. (바토의 이런 모습은 작품 내에서 '인형놀이를 하는 아이들'이라는 은유로 깊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여러가지 답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 한번 더 보고 나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더구나 바토는 자신의 그런 불완전성과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작품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개에게로 돌아갑니다. 때문에 소령을 찾는 바토의 여정은 헤라클레스의 고난이 아니라 어릴적 첫사랑의 흔적을 따라가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똑같은 이야기 구조가 이토록 통속적으로 변하는 데는 사실 바토보다는 소령의 탓이 큽니다. 소령의 존재는 상징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기계장치의 신 deus ex machina'입니다. 전작에서 인형사가 담당했던 바로 그 역할이죠. 네트워크 공간의 '어느곳에나 존재'하는 그녀는 바토를 따라다니며 단서를 흘려주고 때로는 뒤에서 도와주기도 하며 최후에는 기계장치의 모습으로 나타나 갈등을 최종적으로 해결합니다.
그런데 이 갈등 해결 부분이 인형사와 소령의 차이점입니다. 인형사는 소령을 존재의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타자였던 반면에 소령은 바토의 추억의 조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소령이 바토에게 흘려주는 단서 역시 바토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야 전작과 똑같은 역할을 맡아서는 전작과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일 뿐이겠지만, 이런 소령이 인형의 모습으로 나타나 바토의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가게 되니 긴장감있게 잘 이어오던 이야기가 뚝 끊기고 허탈한 결말을 맞게 되더군요.
결과적으로 바토는 반쯤은 소령이 이끄는 대로, 반쯤은 자신의 발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만, 그 길을 걸어온 그녀를 이해하지도, 또다른 길을 선택하지도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오기만 한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각기동대는 소령 대신 바토가 부르는 공각기동대의 긴 후렴구로 보이는군요. 후렴이 노래의 본 주제만큼 즐겁다면야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다시 부르는 사람인 바토가 노래의 본 주제에 관심도 없고 본 주제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면 따분한 후렴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모든 거장들의 작품이 그렇듯 이노센스도 여러가지 다른 각도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고 저에게도 아직 한번 더 보면서 정리하고 싶은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습니다만, 거기에 대해서 또 쓰게 될지 어떨지는 DVD가 출시되고 나서 다시 한번.

p.s. 바토의 일본어 발음은 'バト一'입니다. '바:토'가 아니라 '바토:'로 읽어야 하는 것이고, (일본어는 현대 우리말보다 장음과 단음의 구별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도 '버트'와 비슷해지지는 않는데 우리말 자막에서는 '버트'로 번역했더군요. 사소한 문제지만 계속 신경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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