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뇌인간의 탄생

from 글질 2004/06/16 13:10
'I, Robot'에서
노골적으로 따온
제목이군요.
예,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몸속에 심은 칩과 신경조직을 통해 통신하는 최초의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최초의 전뇌인간이니, Homo Cybernetics니 말들이 많습니다만 호칭은 어찌되건 좋겠지요. 어찌됐건 전뇌와 의체와 타치코마가 날뛰는 공각기동대의 세계가 서서히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케빈 워릭은 영국 Reading 대학교 사이버네틱스과의 교수입니다. 걷고 뛰고 말하고 춤추는 최신의 똑똑한 로봇들을 만드는 로봇공학자이기도 하지요. 1998년, 이 사람은 최초로 치료용 목적이 아닌 마이크로칩을 자신의 팔 내부에 이식하여 이 장치를 통해 신체 외부와 전자통신하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6년 전 얘기니 약간 뒷북이군요)
사실 실험의 성격은 식물인간이 될 위험을 감수한 것 치고는 초보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위치를 감지한 센서가 방 내부의 불을 자동으로 켜고 꺼준다거나, 로봇 팔이 자기의 팔 움직임을 따라하게 한다거나 하는 수준이지요. 물론 이런 기술은 이미 전차 의체를 통해 상당수 실용화되어 선보인 바 있고 쥐를 가지고 한 동물실험의 경우 아예 컨트롤러를 뇌에 심어 원격조종하는 실험까지 선보인 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사람과 비슷해지려면 갈 길이 멀기만 한 인공지능 기술에 비해 인간의 의지만으로 기계를 조작하는 인간-기계 융합 기술이 훨씬 빠른 속도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80년대의 인공지능 열풍이 한풀 꺾이고 나서 90년대에 로봇공학자들을 열광시킨 주제는 인간의 신체와 기계 사이의 소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요즘 소리소문없이 등장하고 있는 뇌파 인터페이스나 이번에 등장한 것 같은 전뇌인간입니다.
뇌파 인터페이스의 경우 호주의 서울과학관...정도에 해당하는 Questacon이란 곳에 들렀다가 우연히 시험해보게 되었습니다만, 아직은 컨트롤도 어렵고 초보적인 조작밖에 불가능하다고 해도, 일단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악을 느꼈습니다. 머리에 모자 같은 걸 쓰고 화면을 보면서 정신을 집중하면 생각한대로는 아니지만 대충 비슷한 색깔과 방향으로 붓이 움직이며 화면이 칠해지는데, 디바이스도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작은 걸 보면 기술적인 장벽들은 상당부분 해결되었고 이걸 어떻게 정교하게 만드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이보그라고 꼭 이분들처럼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공각기동대 2nd GIG DVD 표지그림)

수많은 SF 작가들이 예언해온 대로 정말로 기계가 미래를 지배한다면, 그 주인공은 로봇들의 백만대군도 매트릭스도 아닌 기계와 융합한 인간, 유기체와 기계의 하이브리드일 겁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방법은 사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죠. 인간의 몸속에 스며들어 공생하면 5000년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금속문명에 무임승차한 채 고스란히 세계를 접수할 수 있습니다. 기계 입장에서는 진화론으로 보나 에너지 면에서 보나 인간에 기생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지요.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로군요.

나는, 혹은 당신은 기계와의 공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p.s. 혹시나 책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 분들을 위해 : 실험을 진행한 저자의 용기는 가상합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 사람의 책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번역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글 자체가 읽는 맛이 부족한데다, 글의 초반은 상당부분이 쓸데없는 자신의 과거사와 자기 자랑으로 점철되어 있고 인공지능 불가론자들을 비아냥거리며 로봇의 능력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부분도 별로 맘에 안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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