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고전' 과목 마지막 레포트는 '자신만의 고전 써보기'였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자기 입으로 '고전'이라고 부르다니 염치가 없지만 -_-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투로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힘겨웠지만 즐거운 과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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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왜 사라졌는가
황제의 치세가 끝났다. 오랜 치세 기간 동안 제국을 현명하게 다스린 황제는 많은 아들들 가운데 가장 강건한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료들에게 새 황제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했다. 황제의 치세는 전에 없던 태평성대였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각종 신기술이 널리 퍼져 백성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어느 때보다 풍족했고, 풍족한 제국의 국토를 질투하여 침략해온 적국의 군사들은 황제의 귀신같은 계략에 당해내지 못하고 모두 패퇴했다. 탁월한 학자이기도 했던 황제는 수도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종종 참석하여 그 곳에 모인 수많은 석학들을 압도할만한 놀라운 학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료들은 황제의 강력한 힘을 두려워하고, 한계가 없는 지혜를 경외했다. 가끔 조정에서 역심을 품은 신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불길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그들은 불안해했지만,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성군을 모시고 있는 그들의 자부심이 그런 작은 불안을 잊게 해 주었다.
제국의 어떤 신민보다도 현명했던 황제의 비밀은 그의 식생활에 있었다. 황제는 책에서 지식을 얻었으나 그것을 읽어서 얻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먹어서' 얻었다. 책을 남김없이 꼭꼭 씹어서 먹어 없애면 한 글자 한 글자가 남김없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책에 나오지 않는 처음 보는 기이한 생물이 있으면 그는 궁정학사들에게 그것을 연구하라는 명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적당히 요리해서 먹기만 하면 생물의 습성과 서식처와 유용한 특징을 마치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제국의 도서관이자 백과사전이자 동식물도감이자 지리서였다. 자기가 다스리는 국토를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 전대 모든 전략가들의 전략을 세부까지 하나하나 알고 있는 황제는 전장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식물을 알고 어느 곳에 어떤 자원이 많은지를 자기 머릿속에 모두 꿰고 있었던 그는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발명가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종종, 끔찍스럽지만, 적국의 포로나 때로는 의심스러운 자기의 신료들을 몰래 불러들여 잡아먹기도 했다. 잡아먹힌 신료는 황제에게 양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적국의 내부사정, 반란조직의 정보, 정치에 관한 지식까지 덤으로 제공했다. 제국의 적 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행방불명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백성들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해낸 황제는, 성군으로서의 인자한 마음뿐만 아니라 성군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황제는 늙었고, 더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도, 더 이상 잡아먹을만한 신료도 없었다. 이무기를 닮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이나 역한 냄새를 풍기는 식물까지는 괜찮았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경험이었고, 그렇게까지 하여 나라를 계속 다스리기에 그는 너무 늙었다. 그의 모든 지식을 전수하여 가르친 태자는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릴 자질이 충분했고, 그에게 방해가 될 만한 반대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제거했다. 이제 그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그만두고, 그가 늘 꿈꾸던 한가하고 여유로운 생활, 책을 아귀아귀 씹어 먹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생활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젊은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성공적으로 선황제가 되었다.
선황제의 생활은 한가했다. 황제의 권력을 갖고, 나라를 다스려야 할 책임은 갖지 않은 자리가 바로 선황제의 자리였다. 매일같이 수십 명의 신료들이 선황제의 현명한 조언을 얻기 위해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별궁 앞에 문지기를 두고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는 신료들을 모두 내쳤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황궁의 후원에서 한가하게 책을 읽고, 후궁들을 희롱하고, 잔치를 열기도 했다. 가끔 궐 밖에 사냥을 나서면 그를 경애하는 백성들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럴 때야말로 그는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선황제의 즐거운 나날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그의 진정한 기쁨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에 있었다. 평범한 음식은 그의 식욕은 채워주었지만, 그의 지식욕은 채워 주지 못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음식들, 책이나, 기화요초나, 신화에나 나올 것 같은 기이한 짐승들은 그의 지식욕을 채워주는 만큼 또한 끔찍한 경험이었다. 처음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날 무렵에는 한가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지만, 존재하는 대부분의 책은 이미 그의 재위 시절에 한 번씩 맛보았고, 퇴위하고 나서 나머지를 먹어 없애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읽을 책도, 먹을 것도 없어진 그는 지루해져서, 가능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고 싶어졌다.
그날부터 그는 신료들을 불러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기 시작했다. 심심해진 선황제가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궁정 안에 퍼졌고, 궁정의 신료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너무 바쁜 대장군 대신 근위대장이 달려와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늙은 그의 몸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너무 힘겨웠을 뿐만 아니라, 근위대장과 대련할 때면 옛 주군을 살살 봐주면서 대련하는 근위대장의 태도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을 호령하던 옛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는 일주일 만에 수련을 그만두고 근위대장을 돌려보냈다.
궁내부장이 그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달려왔다. 선황제는 분명 요리에는 소질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끔찍한 음식들을 가능하면 먹을 수 있는 것에 가깝게 요리해 섭취하려는 그의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요리는 오히려 싫어했다. 주인을 기쁘게 하고 싶었던 궁내부장은 주인의 불같은 노성만을 듣고 영문도 모른 채 돌아가야 했다.
성군을 경애하는 방랑시인들이 한 달에도 몇 번씩 궁정에 들러 그에게 새로 지은 서사시를 들려주었다. 전대의 업적을 찬양하는 서사시는 선황제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방랑시인들의 서사시는 기존에 있던 서사시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나 자주 새로운 서사시를 지어야 하는 유랑시인들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서사시를 외워 알고 있는 제국의 백과사전을 기쁘게 하기에 표절작들은 부족함이 많았다.
외무대신은 선황제에게 여행을 권했다. 이 제안은 다른 제안들보다 크게 선황제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치세 기간 내내 시찰의 목적 외에 개인적인 목적으로는 한번도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황제에게 새로운 땅을 여행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그는 당장 가장 편안한 마차와 튼튼한 말 네 필, 그리고 시종 한명만을 대동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은퇴한 황제의 심심풀이를 위해 골치를 썩이고 있던 신하들이 외무대신의 기지를 칭찬한 것은 물론이었다.
세계는 넓었다. 황제는 자신의 지식으로도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기쁨을 느꼈다. 제국 황실에서조차 미처 구할 수 없었던 책들을 구할 수 있었고, 머릿속의 제국 동식물도감에 몇 종류의 새로운 생물들을 더 추가할 수도 있었다. 신민들이 황궁으로 올려보내 주던 서적과 특산물과 발명품의 종류에 한계를 느꼈던 황제는 자기 발로 직접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국 구석구석을 탐사하는 데 얼마간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넓긴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광대한 제국의 영토 밖에 있는 나라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좋은 풍광이나 이국의 정취,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 따위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의 식욕, 다시 말해 지식욕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무한한 지식을 원했다. 황제는 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황궁에 돌아가 이번에는 바둑에 도전해 보리라. 아니면 기화요초들을 모아 길러 작은 식물원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 황제는 한 점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자기가 다스리던 땅의 구석구석을 자기 손바닥처럼 알고 있었던 황제는 그 점집이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점성술사가 차린 집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혹시나 이 점성술사가 자기를 즐겁게 해줄 것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고 변복을 한 채 점성술사를 방문했다.
점성술사를 만나 황제는 물었다.
“세상이 평화로우니 몸이 편한 것은 좋지만, 나 같은 한량들은 도무지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구려. 혹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이한 학문이나 기발한 발명품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신 일이 있소?”
그러자 점성술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별을 보는 것 말고 학문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폐하. 그러나 폐하와 견줄만한 학식을 가진 이가 이 땅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폐하의 높은 학식을 글로 남겨 후세에 전하신다면 저희 백성들을 위해 그보다 더한 은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돌아오는 길에 황제는 책을 쓰는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그가 먹어치운 지식의 양은 제국의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 남은 평생동안 쉼없이 써도 채 100분의 1도 써내지 못하리라. 죽을 때까지 절대 무료해질 리 없는 소일거리임에는 분명했다. 오히려 문제는 무엇을 쓰는가에 있었다. 자기가 먹어치운 그 모든 지식 가운데 자신만의 지식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제국 도서관에 담긴 모든 책의 내용을 집대성할 수는 있어도, 자신만의 사상이 담긴 책은 한 줄도 써낼 수 없었다. 황제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황궁에 돌아온 황제는 그 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제국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 자신의 무한한 지식은 모두 제국을 위한 것이었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남김없이 배우고 세상의 모든 땅을 자기 손바닥처럼 알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것이 황제의 딜레마였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할 일도, 알아야 할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지식의 처녀지는 오직 자기 자신 뿐이었다.
그때부터 황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을 떨쳐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어떤 책을 먹어보아도 그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답답해진 황제는 자신의 왼쪽 손가락 하나를 잘라먹어 보았다. 고통스러웠지만, 처음으로 악보를 먹어보았을 때 그의 손가락이 거문고를 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도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는 황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이번엔 왼팔을 통째로 잘라내었다. 그리고 기절하기 직전의 고통 속에 왼팔을 요리해 먹어보았다. 이번에는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말을 타 보았을 때의 흥분이, 전장을 호령하던 시절의 기억이, 태자를 가르칠 때의 즐거움이, 그가 여태껏 모르던 감정들이 전해져 들어왔다. 그는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왼발을, 오른쪽 다리를, 그리고, 그리고...
그 이후 선황제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새 황제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써 보았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선황제의 한없는 지혜를 경외한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가 신선들의 땅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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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치세가 끝났다. 오랜 치세 기간 동안 제국을 현명하게 다스린 황제는 많은 아들들 가운데 가장 강건한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료들에게 새 황제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했다. 황제의 치세는 전에 없던 태평성대였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각종 신기술이 널리 퍼져 백성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어느 때보다 풍족했고, 풍족한 제국의 국토를 질투하여 침략해온 적국의 군사들은 황제의 귀신같은 계략에 당해내지 못하고 모두 패퇴했다. 탁월한 학자이기도 했던 황제는 수도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종종 참석하여 그 곳에 모인 수많은 석학들을 압도할만한 놀라운 학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료들은 황제의 강력한 힘을 두려워하고, 한계가 없는 지혜를 경외했다. 가끔 조정에서 역심을 품은 신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불길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그들은 불안해했지만,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성군을 모시고 있는 그들의 자부심이 그런 작은 불안을 잊게 해 주었다.
제국의 어떤 신민보다도 현명했던 황제의 비밀은 그의 식생활에 있었다. 황제는 책에서 지식을 얻었으나 그것을 읽어서 얻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먹어서' 얻었다. 책을 남김없이 꼭꼭 씹어서 먹어 없애면 한 글자 한 글자가 남김없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책에 나오지 않는 처음 보는 기이한 생물이 있으면 그는 궁정학사들에게 그것을 연구하라는 명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적당히 요리해서 먹기만 하면 생물의 습성과 서식처와 유용한 특징을 마치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제국의 도서관이자 백과사전이자 동식물도감이자 지리서였다. 자기가 다스리는 국토를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 전대 모든 전략가들의 전략을 세부까지 하나하나 알고 있는 황제는 전장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식물을 알고 어느 곳에 어떤 자원이 많은지를 자기 머릿속에 모두 꿰고 있었던 그는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발명가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종종, 끔찍스럽지만, 적국의 포로나 때로는 의심스러운 자기의 신료들을 몰래 불러들여 잡아먹기도 했다. 잡아먹힌 신료는 황제에게 양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적국의 내부사정, 반란조직의 정보, 정치에 관한 지식까지 덤으로 제공했다. 제국의 적 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행방불명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백성들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해낸 황제는, 성군으로서의 인자한 마음뿐만 아니라 성군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황제는 늙었고, 더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도, 더 이상 잡아먹을만한 신료도 없었다. 이무기를 닮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이나 역한 냄새를 풍기는 식물까지는 괜찮았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경험이었고, 그렇게까지 하여 나라를 계속 다스리기에 그는 너무 늙었다. 그의 모든 지식을 전수하여 가르친 태자는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릴 자질이 충분했고, 그에게 방해가 될 만한 반대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제거했다. 이제 그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그만두고, 그가 늘 꿈꾸던 한가하고 여유로운 생활, 책을 아귀아귀 씹어 먹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생활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젊은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성공적으로 선황제가 되었다.
선황제의 생활은 한가했다. 황제의 권력을 갖고, 나라를 다스려야 할 책임은 갖지 않은 자리가 바로 선황제의 자리였다. 매일같이 수십 명의 신료들이 선황제의 현명한 조언을 얻기 위해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별궁 앞에 문지기를 두고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는 신료들을 모두 내쳤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황궁의 후원에서 한가하게 책을 읽고, 후궁들을 희롱하고, 잔치를 열기도 했다. 가끔 궐 밖에 사냥을 나서면 그를 경애하는 백성들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럴 때야말로 그는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선황제의 즐거운 나날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그의 진정한 기쁨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에 있었다. 평범한 음식은 그의 식욕은 채워주었지만, 그의 지식욕은 채워 주지 못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음식들, 책이나, 기화요초나, 신화에나 나올 것 같은 기이한 짐승들은 그의 지식욕을 채워주는 만큼 또한 끔찍한 경험이었다. 처음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날 무렵에는 한가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지만, 존재하는 대부분의 책은 이미 그의 재위 시절에 한 번씩 맛보았고, 퇴위하고 나서 나머지를 먹어 없애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읽을 책도, 먹을 것도 없어진 그는 지루해져서, 가능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고 싶어졌다.
그날부터 그는 신료들을 불러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기 시작했다. 심심해진 선황제가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궁정 안에 퍼졌고, 궁정의 신료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너무 바쁜 대장군 대신 근위대장이 달려와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늙은 그의 몸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너무 힘겨웠을 뿐만 아니라, 근위대장과 대련할 때면 옛 주군을 살살 봐주면서 대련하는 근위대장의 태도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을 호령하던 옛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는 일주일 만에 수련을 그만두고 근위대장을 돌려보냈다.
궁내부장이 그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달려왔다. 선황제는 분명 요리에는 소질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끔찍한 음식들을 가능하면 먹을 수 있는 것에 가깝게 요리해 섭취하려는 그의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요리는 오히려 싫어했다. 주인을 기쁘게 하고 싶었던 궁내부장은 주인의 불같은 노성만을 듣고 영문도 모른 채 돌아가야 했다.
성군을 경애하는 방랑시인들이 한 달에도 몇 번씩 궁정에 들러 그에게 새로 지은 서사시를 들려주었다. 전대의 업적을 찬양하는 서사시는 선황제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방랑시인들의 서사시는 기존에 있던 서사시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나 자주 새로운 서사시를 지어야 하는 유랑시인들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서사시를 외워 알고 있는 제국의 백과사전을 기쁘게 하기에 표절작들은 부족함이 많았다.
외무대신은 선황제에게 여행을 권했다. 이 제안은 다른 제안들보다 크게 선황제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치세 기간 내내 시찰의 목적 외에 개인적인 목적으로는 한번도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황제에게 새로운 땅을 여행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그는 당장 가장 편안한 마차와 튼튼한 말 네 필, 그리고 시종 한명만을 대동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은퇴한 황제의 심심풀이를 위해 골치를 썩이고 있던 신하들이 외무대신의 기지를 칭찬한 것은 물론이었다.
세계는 넓었다. 황제는 자신의 지식으로도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기쁨을 느꼈다. 제국 황실에서조차 미처 구할 수 없었던 책들을 구할 수 있었고, 머릿속의 제국 동식물도감에 몇 종류의 새로운 생물들을 더 추가할 수도 있었다. 신민들이 황궁으로 올려보내 주던 서적과 특산물과 발명품의 종류에 한계를 느꼈던 황제는 자기 발로 직접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국 구석구석을 탐사하는 데 얼마간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넓긴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광대한 제국의 영토 밖에 있는 나라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좋은 풍광이나 이국의 정취,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 따위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의 식욕, 다시 말해 지식욕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무한한 지식을 원했다. 황제는 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황궁에 돌아가 이번에는 바둑에 도전해 보리라. 아니면 기화요초들을 모아 길러 작은 식물원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 황제는 한 점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자기가 다스리던 땅의 구석구석을 자기 손바닥처럼 알고 있었던 황제는 그 점집이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점성술사가 차린 집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혹시나 이 점성술사가 자기를 즐겁게 해줄 것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고 변복을 한 채 점성술사를 방문했다.
점성술사를 만나 황제는 물었다.
“세상이 평화로우니 몸이 편한 것은 좋지만, 나 같은 한량들은 도무지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구려. 혹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이한 학문이나 기발한 발명품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신 일이 있소?”
그러자 점성술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별을 보는 것 말고 학문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폐하. 그러나 폐하와 견줄만한 학식을 가진 이가 이 땅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폐하의 높은 학식을 글로 남겨 후세에 전하신다면 저희 백성들을 위해 그보다 더한 은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돌아오는 길에 황제는 책을 쓰는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그가 먹어치운 지식의 양은 제국의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 남은 평생동안 쉼없이 써도 채 100분의 1도 써내지 못하리라. 죽을 때까지 절대 무료해질 리 없는 소일거리임에는 분명했다. 오히려 문제는 무엇을 쓰는가에 있었다. 자기가 먹어치운 그 모든 지식 가운데 자신만의 지식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제국 도서관에 담긴 모든 책의 내용을 집대성할 수는 있어도, 자신만의 사상이 담긴 책은 한 줄도 써낼 수 없었다. 황제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황궁에 돌아온 황제는 그 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제국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 자신의 무한한 지식은 모두 제국을 위한 것이었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남김없이 배우고 세상의 모든 땅을 자기 손바닥처럼 알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것이 황제의 딜레마였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할 일도, 알아야 할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지식의 처녀지는 오직 자기 자신 뿐이었다.
그때부터 황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을 떨쳐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어떤 책을 먹어보아도 그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답답해진 황제는 자신의 왼쪽 손가락 하나를 잘라먹어 보았다. 고통스러웠지만, 처음으로 악보를 먹어보았을 때 그의 손가락이 거문고를 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도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는 황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이번엔 왼팔을 통째로 잘라내었다. 그리고 기절하기 직전의 고통 속에 왼팔을 요리해 먹어보았다. 이번에는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말을 타 보았을 때의 흥분이, 전장을 호령하던 시절의 기억이, 태자를 가르칠 때의 즐거움이, 그가 여태껏 모르던 감정들이 전해져 들어왔다. 그는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왼발을, 오른쪽 다리를, 그리고, 그리고...
그 이후 선황제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새 황제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써 보았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선황제의 한없는 지혜를 경외한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가 신선들의 땅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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