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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War 보고 왔습니다. 2007/08/03
어쩌다보니 말많은 심형래씨의 작품 "D-War"를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습니다. 보기 전엔 별로 할 얘기가 없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쓸 얘기가 많이 생각나네요.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스포일러라 할만한 것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런이런 장면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조차 스포일러로 간주하시는 분들은 아래 글은 안 읽으시는 것이 좋겠네요.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영화 개봉하기 전에 워낙 욕이 많아서 좀 걱정했는데 뭐 그냥저냥 평범한 (그러나 극장에서 챙겨보지는 않을) 헐리우드 영화 시나리오더군요. "반 헬싱"보다는 낫고 "슈퍼맨 리턴즈"보다는 재미없는 정도? 보다가 시나리오가 너무 엉망이어서 화가 나는 정도는 아닙니다. 평균적인 헐리우드 영화들과 다른 점은 플롯에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연기 지도가 부족해서인지 배우들의 연기도 실망스럽다는 점인데... (연기 질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들쭉날쭉하는 걸 보면 배우의 자질 문제는 아닌 것 같더군요) 뭐 시나리오가 재미없으면 개연성은 있으나 없으나 연기력도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연출가로서 심형래의 눈은 전성기 때 찍던 우뢰매 정도에서 큰 발전이 없는 것 같더군요.

다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개그 신과 자기 패러디(Sim's Zoo 라던가...)는 나름 괜찮았는데요, 이 부분은 역시 개그맨으로서의 그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차라리 좀더 대놓고 개그를 해주었으면 나름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괴수영화, (심 감독은 SF라고 하지만 사실 SF는 아니죠) 그것도 "킹콩"과 "고질라"류의 대괴수 대도시 대난동 -_- 영화입니다. 누가 이런 영화에서 안정적인 플롯이나 참신한 개그를 신경쓰나요. 주인공은 바로 괴수지요. 그 주인공 괴수인 이무기가 어땠냐 하면... 저는 썩 만족스러웠습니다. 일부러 구름으로 가리는 연출을 해서 세세한 질감이나 그림자 등이 좀 가리긴 했지만, 대낮에 LA 시내를 쏘다니는 이무기는 장대하기도 했고, 디테일도 훌륭한데다, 이무기가 난동을 부릴 때 보여주는 액션감도 그럴싸하더군요. 거대한 크기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의외로 이무기보다는 조그만 부하 괴물들이었어요. 포를 쏘는 스테고사우르스 같은 괴물은 꽤나 귀여웠어요. "불코"라는 익룡을 닮은 괴물들이 헬기와 전투하는 장면의 액션감은 불만이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괴물들과 탱크와의 대치 신에서는 서로 포를 쏘는 전투보다는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을 강조하는 편이 영화적으로는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좀 아쉽더군요.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특수효과가 A급으로 훌륭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관객에게 몰입감을 가져다주는 잘 만든 특수효과가 아니라 아 공을 많이 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잘 만든 CG였어요. 괴물의 텍스처도 훌륭하고, 운동감과 액션감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지만, 아까도 말했던 대로 괴물의 중량감이나 현실감은 훨씬 떨어졌습니다.

비현실적인 대괴수가 현실적인 대도시를 파괴하고 다니는 이런 영화에서 정말로 공을 들여야 하는 특수효과 괴수보다는 그 괴수에 의해 파괴되는 도시와 물건과 사람들입니다. 괴수의 묵직한 중량감은 괴수 그 자체의 모양보다는 그에 의해 파괴되는 주변 물체들이 어떻게 부서지는가가 더 크게 좌우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괴수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그 괴수 자체가 현실적으로 생겼느냐보다는 그 괴수가 부수고 휩쓸고 다니는 주변 사물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보이고 현실적으로 부서지냐가 더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지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배경적 요소들이 괴물 자체와 잘 동화될수록 그래픽의 현실감은 증폭되는데, "D-War"는 이런 부분에 많이 신경쓰지 못한 티가 역력했습니다. 이무기가 밝은 대낮에 공포를 뿌리며 시내를 질주했어야 할 장면은 공포보다는 폭염과 연기를 더 많이 뿌리느라 이무기의 모습을 많이 가렸고요, 이무기가 고층빌딩을 휘감고 여러대의 헬기와 싸우는 장면은 정작 대도시 시퀀스의 하이라이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헬기 한 대 물어서 바닥에 동댕이치는 데서 시시하게 끝났습니다.

인간들이나 적군 보병인 아트록스 부대들이 나오는 부분은 솔직히 좀 실망이 컸는데요... CG의 질을 논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좀더 세련되어진 우뢰매 특수효과라는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뭐 이 영화에서 매트릭스 같은 액션을 기대한 건 아니니 그 부분은 넘어갑시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 신에 배경이 되는 건물은 사실적인 질감에 자신이 없었는지 블러 처리한 티가 너무 심하게 났는데... 물론 중요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니어처를 세심하게 만드는 편이 차라리 돈은 덜 들여도 더 좋은 효과가 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점은 이런 류의 괴수영화에서 응당 기대해야 할 서스펜스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겠지요. 이런 영화에서 괴수 자체의 액션보다는 그 거대한 괴수가 인간들에게 가져다주는 액션과 서스펜스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훌륭한 서스펜스를 주는 장면은 사실 없었습니다. 심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 "쥬라기공원"과 비교를 하시면서 그 영화에 무슨 훌륭한 스토리가 있냐 하셨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스필버그를 너무 과소평가하셨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저 멀리서 쿵...쿵...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주는 긴장감,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잘 못 본다는 그 거대한 공룡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냄새를 맡을 때 꼼짝도 못하고 덜덜 떨어야 하는 인간들의 그 공포감, 사람보다 조금 큰 뿐이지만 재빠르고 영리한 벨로시랩터가 두 발로 도약할 때의 액션감. 그런 것들과 비교하기엔 이 영화는 좀 무리가 많습니다. 괴수영화는 그냥 돈을 많이 들인 액션영화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영구 아트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자 심 감독의 첫 대작인 이 작품을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이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킹콩" 같은 걸작들과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공평하겠지요. 좀 아쉬운 부분은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썩 마음에 드는 특수효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이 영화가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선한 이무기가 "드래곤"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으로 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림으로만 봤던 상상 속의 용이 실제로 움직인다면 저렇게 움직이겠지... 하고 생각했던 그 모습이었어요. 이 영화를 지뢰 제 2호라 쓰지 않고 이렇게 길게 아쉬운 점을 잔뜩 늘어놓은 것도, 바로 그 이미지가 보여준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냥 징그럽고 커다란 이무기가 아니라 강력하고 아름다운 용이었어요. 이런 B급 괴수영화 플롯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아쉬울 정도로... 선한 이무기가 그렇게 뜬금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감정이입할 기회를 주고 주인공으로서 얘기를 풀어나갈 자리를 주었다면 더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겠지요. 그랬다면 그 용의 모습에 관객들도 감동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을 텐데 말이예요.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하자면, 감독 심형래에게는 C를, 제작자 심형래에게는 A를 주고싶은 영화였습니다. 제작은 심형래씨가 맡고, 연출은 그냥 특촬물 한두개 찍어본 무명 감독에게라도 던져주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CG는 훌륭하지만 특수효과는 아쉽고, 괴수는 훌륭하지만 연출은 아쉬운... 아쉬운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p.s. 영화와는 별개로, 인간 심형래가 언론에 하고 다니는 말들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충무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진 것은 알겠지만, 그렇게 다른 영화와 다른 사람들을 까내리지 않아도 성공할 영화는 성공하고 실패할 영화는 실패합니다. 제가 들은 건 아니지만 그래픽 쪽 연구하는 석사 박사들 모아놓고 세미나 하면서도 연구자들 깔아뭉개는 얘기를 했다는 소문이 연구실에서 들리더군요. "D-War"가 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쏟아지는 악평은 그런 발언 탓도 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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